이병장의 장난
장난이 부른 공포... 후임이 기절한 이유?
강원도 춘천 시내에 위치한 정보 계통 부대에서 근무했을 때의 일입니다. 부대 외관은 마치 관공서 같아, 부대 정문에 있는 위병이나 부대 이름이 적힌 현판을 보기 전에는 군부대라는 걸 알아차리기 힘들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군 생활에서는 주간과 야간을 가리지 않고 경계 근무를 섭니다. 저희 부대도 마찬가지였죠. 부대 규모가 크지 않아 외곽담장을 한 바퀴 도는 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고, 주택가에 위치해 있던 터라 동초 근무자들은 총 대신 방망이와 호루라기만 들고 순찰을 돌았습니다. 사실 경계 근무라기보다는 초소와 유류고를 한 시간마다 돌아다니며 일지에 서명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제대를 한 달 앞둔 어느 토요일 밤, 저는 말년병장의 특권인 ‘말뚝근무’를 서기로 했습니다. 잠이 부족한 후임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혼자서 근무를 도맡은 것이죠. 그날은 특히 함박눈이 내려서 추운 겨울밤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눈 위로 발자국을 남기며 순찰을 돌다가, 새벽 2시쯤 식당 앞을 지났을 때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니 후임이 잠에서 깨어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있었습니다.
장난기가 발동한 저는 모자를 벗고 얼굴에 손전등을 비춘 채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톡, 톡, 톡..." 후임이 잠에 덜 깼는지 반응이 없더군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러고는 몇 초 동안 저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
'아니, 그냥 놀라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놀라다니...'
사태가 심각해 보였기에 급히 식당으로 들어가려는데, 일직병이 우당탕 소리를 듣고 식당으로 달려왔습니다. 후임을 들쳐 업고 내무반으로 돌아와 흔들어 깨우니, 다행히 정신을 차렸습니다. 다친 곳은 없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시나무 떨 듯이 떠는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하더군요.
“미안하다, 그냥 장난친 건데 네가 그렇게 놀랄 줄은 몰랐다. 내일 네가 좋아하는 짜장면 사줄 테니 푹 자라.”
다음 날, 종교행사를 마치고 후임을 데리고 중국집에 갔습니다. “짜장면 먹고 풀자” 했지만, 짜장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 계속 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주 한 병을 시켜 따라주니 기다렸다는 듯 단숨에 네 잔을 비웠습니다.
"너, 어제 무서워서 그랬지? 내가 사관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 오랜만에 아버지랑 한잔하자."
그러자 후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이병장님, 저 어제 이병장님 장난 때문에 기절한 게 아닙니다."
"그럼 뭐 때문에?"
후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이병장님이 창문 너머로 저를 보실 때, 이병장님 왼쪽 뺨 바로 옆에서... 어떤 여자가 이병장님을 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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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뜨거운 짬뽕국물이 차가운 얼음덩이처럼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 귀신이라도 봤다는 거야?"
후임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엔 저도 착각인 줄 알았는데, 그 여자의 얼굴이 너무도 분명했어요. 창백한 얼굴로 싸늘하게 웃으며 이병장님을 쳐다보고 있었죠. 사람이 아니란 걸 느낀 순간 정신을 잃은 겁니다."
당연히 믿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런 여자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으니까요. 후임의 말을 일축하며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한 후, 술잔을 비우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복귀 후, 전날 일직을 섰던 후임에게 문득 궁금한 게 생겨 물어봤습니다.
“너 어제 내가 뭐 떨어뜨린 빨래 가지러 가야 한다고 말했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 그거요. 어제 이병장님이 뒷문으로 가실 때, 왼쪽 어깨에 하얀 옷 같은 걸 걸치고 계셨습니다. 눈 때문에 빨래를 걷어 오셨나 했는데, 바람에 휙 날아가는 걸 봤습니다. 그래서 주우라고 말씀드린 건데... 혹시 못 찾으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저는 빨래를 걷어온 적도, 어깨에 무언가를 걸친 적도 없었거든요. 후임은 귀신을 보았다고 하고, 또 다른 후임은 제 어깨에 하얀 천이 걸쳐져 있었다고 하니,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녀석이 헛것을 본 것인지, 아니면 정말 제 옆에 무언가가 있었던 것인지.
그날 저녁 다시 말뚝근무를 나가면서도 저도 사람인지라 소름이 돋고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근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용기를 내어 그 식당 창문 쪽으로 다시 가보았습니다. 시간이 새벽 5시쯤이었고, 취사병들이 아침 준비를 시작할 때라 두려움이 좀 가셨죠. 그때, 어제 제가 느꼈던 그 순간적인 싸늘함이 떠올랐습니다. 분명 눈이 포근하게 내리는 날, 갑작스러운 바람 같은 건 불지 않았을 텐데... 그때 느꼈던 찬 기운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날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날의 소름 끼치는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 못했으니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가끔씩 제 왼쪽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질 때면 옆을 보기가 두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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