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택시ㅣ택시 뒷좌석의 그녀, 알고 보니... 소름 돋는 진실!
차창을 두드리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나는 와이퍼 속도를 한 단계 더 올렸다. 장마철이라서 비가 그쳤다 싶으면 금세 다시 퍼붓기 일쑤였다. 이러다가는 오늘 영치금도 못 낼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보통 이 시간에는 취객들이 많아야 할 텐데, 비 때문인지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가끔 반대편 차선으로 차들이 지나가는 것만 보일 뿐, 사람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헤드라이트에 비친 빗방울들이 점점 더 크게 보였다. 비가 정말 많이 오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차가 도로 위에서 미끄러지며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택시가 잠수함이라도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부산 라 1990 영업용 택시를 운전한 지 한 달 정도 됐다. 요즘 일자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어쩔 수 없이 대학 시절 친구 따라 땄던 택시 면허를 써먹을 때가 왔다. 개인택시를 몰려면 경력이 필요하니, 영업택시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 심야 시간대에 핸들을 잡는 일이 많아졌다.
밤 11시 교대 후, 심야 할증 시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장거리를 잡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날에는 꽤 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은 완전히 공치는 날도 많다. 교대 후 두 시간이 지나도록 한 명의 손님도 태우지 못했다. 아니, 지나가는 사람조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편도 4차선 도로를 포기하고 우회전을 했다. 5분쯤 달렸을까, 저 멀리 가로등 밑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른 택시가 먼저 발견할까 봐 서둘러 차선을 변경했다. 빗물로 흐릿해진 시야 너머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흰색 원피스를 입고 홀로 서 있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지만, 비에 젖은 채 서 있는 여자는 분명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녀 앞에 차를 세웠다.
잠시 동안 아무 기척이 없었다. 택시를 탈 생각이 없는 건가 싶어 사이드미러를 봤다. 그런데 어느새 그녀는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두구동으로 가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두구동은 꽤 먼 거리라, 오늘 영치금은 해결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차 안에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나는 에어컨을 끄고 룸미러로 뒷좌석을 쳐다봤다. 비에 젖은 머리카락에 가려 그녀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비 속에 고립된 것처럼, 우리 둘만 남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나는 말을 걸었다.
“비가 많이 오네요.”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말을 걸었다.
“택시 오래 기다리셨어요? 우산도 없으시고… 택시가 잘 안 잡혔나 보네요?”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빗소리만이 차창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 순간, 불안감이 서서히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혹시... 귀신을 태운 건가?’
얼마 전 동료 기사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으스스한 밤, 손님을 태웠는데, 그 손님은 행선지만 말하고 아무 대답도 없었다고 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잠시 기다려 달라며 사라졌는데, 그 후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기사들 사이에서는 가끔 귀신을 태운다는 소문이 있었다. 귀신은 보통 자신이 돌아갈 제삿집이나 무덤으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타고, 그런 손님을 태우면 행운이 따른다는 얘기였다.
나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다시 룸미러를 봤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여자가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귀신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이쯤 되니 도저히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아는 지름길로 서둘러 차를 몰았다. 도중에 세울 수도 없었다. 멈추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등골이 서늘해져 액셀에 힘이 더 들어갔다. 와이퍼는 미친 듯이 움직였다.
두구동에 가까워지자 화장터로 가는 이정표가 보였다. 아, 여긴 영락공원이 있는 곳이지. 그 순간,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마치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했다.
“여기서 좌회전 해 주세요…”
나는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신호도 무시한 채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그녀가 조용히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숨을 고르며 떨리는 손을 진정시켰다. 정말 이렇게 긴장한 적은 처음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비를 가지고 올게요.”
룸미러 속 그녀는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 뒷좌석에 올려두고는, 소리 없이 차에서 내렸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라디오를 켜며 왜 진작 틀지 않았는지 자문했다. 주파수를 맞추자마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직… 다음은 사고 소식입니다.”
나는 뒷좌석에 남겨진 반지를 흘깃 보며, 허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상한 기분이 들지?
“광안대교에서 3톤 화물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져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를 들이받아, 택시가 바다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부산 라 1990 영업용 택시 운전자가 숨지고, 트럭 운전자는 중상을 입어…”
뉴스는 그 자리에서 사망한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한편, 은주는 이별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머리를 대충 말리고 젖은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택시비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녀의 커플링만이 빗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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