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짐
[아이의 속삭임, '엄마가 부르고 있어요.']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사려고 가판대 앞에 섰다. 그런데, 불쑥 6,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 옆에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뜻밖의 인사에 나는 당황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또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담배를 사려고 하잖아.”
아이의 묘한 질문에 나는 대충 쌀쌀맞게 답했다. 지갑을 꺼내 담배를 사고 있을 때까지도, 그 아이는 “오늘 날씨 좋네요.” 같은 말로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적당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런데, 내가 담배를 사고 가려던 찰나, 그 아이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았다.
“어머니가 부르고 계세요. 같이 가 주세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나를 부른다는 거지? 그저 아이의 착각이겠거니 하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아이는 놓아주지 않고 반복했다.
“어머니가 부르고 계세요.”
끝내 나도 지쳐서, 무심결에 아이를 따라가게 되었다. 혹시나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분쯤 걸어 도착한 곳은 황혼빛이 물든 조용한 놀이터였다. 그네와 정글짐이 있고, 등나무가 감싸고 있는 벤치가 보였다. 아이는 나를 벤치 쪽으로 이끌었다.
“엄마, 데리고 왔어요.”
아이의 말에, 나는 벤치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등나무에 가려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해요, 저희 딸이…”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위험하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다. 곧바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나, 놀고 올게.”
갑자기 아이는 손을 놓고 정글짐으로 달려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벤치 쪽으로 다가갔다. 벤치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여자가 앉아 있었다. 어깨 길이의 머리를 한 30대 초반의 여성. 그녀는 내게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딸이…”
이제는 아무런 이상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과민반응한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날씨 이야기나 요즘 학교 생활 같은 별다를 것 없는 이야기들.
시간이 흘러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공원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그때 문득, 나는 처음부터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떠올렸다. 나는 여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를 부르신 거예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인은 돌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치에!”
그녀가 부른 것은 아마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놀란 나는 등 뒤의 정글짐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무언가가 위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 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몸은 엎드려 있지만, 얼굴은 하늘을 향한 채였다. 크게 뜬 두 눈은 미동도 없었다. 피가 천천히 주변으로 번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충격에 얼어붙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미세하게 몸을 움직였다. 아직 살아 있는 걸까? 나는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엄…마…”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찾으려 벤치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어머니는 없었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어머니는 왜 아이에게 달려오지 않았을까?
“가지마…”
다시 아이가 속삭였다. 나는 절망적인 기분으로 그녀를 달랬다.
“괜찮아, 어머니가 도와줄 거야.”
하지만 그건 헛된 위로였다. 나는 눈앞에 벌어진 참극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이미 목이 꺾여 있었다.
“…엄마가 부르고 있어…”
그녀가 또다시 중얼거렸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들어 정글짐 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을 마주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글짐에 매달려 있었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듯한 그 모습, 잔뜩 부풀어오른 혀와 탁한 눈. 그리고 그 여자의 입이 서서히 열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저희 딸이…”
그 다음 기억은 흐릿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고, 놀이터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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